만나는 개, 만나고 싶은 개
개들, 진열장에 진열된 이 개들, 보거나 말거나 고개를 묻고 웅크린 채 엎드린 체 짖을 줄 모르는 이 개들, 거기서 밥먹고 거기서 똥 누고 불쑥, 목덜미 잡혀 나가거나 말거나 꼼짝 않는 이 개들, 영국산 발바리, 데마크산 스피츠, 잡종의 이 개들, 늙은 독신녀에게 아양이나 떠는 이 개들, 주인에게 꼬리치는 이 개들, 푹신한 소파에 주둥이를 묻고 잠이나 자려는 이 개들, 우락부락한 발톱과 형형한 눈 빛을 잃은 이 개들, 투명한 유리창 진열장 속에 매춘부처럼 지지고 볶고 앉아 팔려갈 날이나 기다리는 이 개들,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살랑거리기나 하는 개들, 짖을 줄 모르고 낑낑거리거나 하는 개들, 가공된 식품에 익숙해진 개들, 뼈다귀도 못 뜯고 고작 우유나 할딱이는 개들, 좁은 거실에서 종종걸음이나 치는 이런, 개 같으니라구-----
또한 그는 그가 만나고 싶어하는 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.
흙 냄새가 나는 개, 땀 냄새가 나는 개, 비와 바람, 구름 냄새가 나는 개, 분노하면 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릉거리는 개, 그러면서도 눈이 맑은 개, 집을 나갔다가 어슬렁어슬렁 찾아들어 오는 개, 발톱으로 흙을 파고 어두운 밤하늘에 목을 뻗어 쳐들고 울부짖을 줄 아는 개, 때론 암캐의 주위를 배회하다 꽁무니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개, 굶주림을 아는 개, 자유를 아는 개, 미세한 바람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는 개, 칠흙 같은 어두운 하늘을 쪼개는 천둥 소리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서는 개, 뜨거운 심장에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어 쇠사슬을 끊고 뛰쳐나가는 개, 만일 이런 개가 또 있다면 당장에 미친개로 낙인찍혀 잡아들여 질 것이다.
복우 씨는 시인이지만 이제 시를 쓰는 것을 고집하지 않는다. 시를 쓰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닌 이상 시는 써도 좋고 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. 그는 농사가 곧 시라고 여긴다. 농사가 곧 시인 이상 더 이상 시인이기를 바라지 않는 모양이다. 오히려 그는 점점 흙과 땀 냄새가 나는 미친 개를 닮은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.
(젊은 귀농자 12인의 아름다운 삶 이야기. 이래서, 나는 농사를 선택했다. 임경수 지음, 1999년, 흙냄새 땀 냄새가 나는 시인 )